[이슈] 또 나이 사칭 스캔들, 아프리카 축구의 사기극인가 비극인가?
고민녀123 작성일 01-20 조회 5,381
거대한 사기극일까, 현실에 짓눌린 비극일까?
아프리카 축구가 또 다시 나이 사칭 스캔들에 휘말렸다. 비극의 주인공은 독일 뒤스부르크 Ⅱ팀에서 뛰고 있는 아프리카 감비아 태생의 공격수 유수파 야파다. 야파는 AC밀란 출신으로 볼로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뒤스부르크를 거친 한 때 유망주로 꼽힌 재능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 범법자의 처지로 내몰렸다. 나이를 속여 불법적 이익을 챙겼다는 혐의다.
사건은 이렇다. 야파는 2009년 가족과 감비아를 떠나 이탈리아 망명을 신청했다. 야파는 망명 신청 과정에서 제출해야 할 신분 증명 서류를 잃어 버렸다며 새로 급조한 신분 서류에 생년월일을 1996년 12월31일로 적었다. 그러니까 13살 때 이탈리아 망명을 신청한 게 된 거다. 시간이 흘러 만 16살이 된 야파는 2013년 입단 테스트를 거쳐 AC밀란의 19세 팀에 입단했다. 당시 밀란 U-19세 팀의 감독은 필리포 인자기였는데 또래들보다 출중한 실력에 기대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야파는 임대를 거쳐 결국 AC밀란을 떠나게 됐다.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더 큰 문제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야파의 신분 서류가 위조됐던 것이다. 나이 사칭이다. 이탈리아 수사 당국이 포착한 야파의 실제 나이는 28살이다. 망명 서류에 적힌 1996년생이 아니라 1987년생이라는 것이다. 한두 살도 아닌 9살이나 나이를 속인 셈이다. 그러니까 야파는 13살이 아닌 22살에 이탈리아로 망명한 것이고, AC밀란 U-19세 팀에 16살이 아닌 25살에 입단한 것이다. 현재의 나이도 만 19살이 아닌 28살인 것이다. 나이 사칭과 서류 조작 혐의로 이탈리아 수사 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AC밀란 측도 야파를 같은 혐의로 기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야파의 나이 사칭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야파가 지난해 1월 폭행 혐의로 체포됐을 당시 만 10대로 소년법이 적용돼 10만유로(1억3000만 원)의 보석금으로 풀려났던 것도 재조사돼 징역형이 구형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인디펜던트 등이 보도한 야파의 나이 사칭 스캔들
9살이나 나이를 속인 야파
AC밀란 기대주에서 한순간 범법자로
‘축구판 피터 팬’ 음임보
나이를 9살이나 감쪽같이 속인 이번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의 나이 사칭에 따른 불신과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선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아프리카 선수들의 영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유럽 축구계의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의 나이를 둘러싼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축구판 피터 팬’ 사건으로 불렸던 카메룬의 토비 음임보의 나이 사칭이 대표적인 사례다.
음임보는 카메룬 출신의 수비수로 1990년대 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1996년과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그가 뛴 대표적인 무대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음임보에게서 일어났다. 음임보가 199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했던 나이(엔트리 등록 나이)는 1964년생 32살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회가 끝나고 1997년 터키 겐츨레르비를리이에 입단할 때 음임보의 나이는 10살이나 준 1974년생 23살로 둔갑해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음임보가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나섰을 때는 출생연도가 또다시 1970년으로 바뀌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때마다 나이가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하며 어떻게 해도 늙지 않는 네버랜드의 피터 팬과 같은 축구 선수가 등장한 것이었다.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의 나이 논란은 음임보 전에도 존재했다. 198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선수들의 나이를 속여 대회에 나서 2년 징계와 다음 대회 개최권 박탈이라 중징계를 받았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나이 사칭 논란이 이어지자 FIFA는 U-17세 월드컵 등 연령별 대회에 X레이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2003년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칠레에서 열린 FIFA U-17월드컵 때도 팀마다 무작위로 지목된 4명의 선수가 MRI 검사를 받았다. 시범 운영 기간이었던 2003년, 2005년, 2007년 17세 이하 대회 샘플 검사 결과 35% 이상이 나이 제한을 넘어선 선수였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충격적인 FIFA 보고서
2014년 에투의 할아버지 골뒷풀이
악마와의 거래
실제 이 기간 동안 2003년 케냐 U-17대표팀의 나이 사칭 문제가 적발됐고 FIFA의 손목뼈 성장판 MRI 검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2009년 이후엔 2009년 나이지리아, 2010년 세네갈 U-17대표팀이 선수들의 나이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나이 사칭 문제가 아프리카 대표팀들에 집중되면서 FIFA U-17월드컵 최다 우승 대륙이라는 명예에도 논란이 덮어씌워지기도 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나이 사칭 문제는 연령별 대회에 국한한 이슈가 아닌 2014년 첼시에서 뛰던 사무엘 에투는 갑자기 불거진 나이 논란으로 원치 않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으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후에는 대회에 참가한 아프리카 선수 중 실제 나이가 마흔이 넘는 선수가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나이 사칭 문제가 과거보다는 줄었다고 하지만 이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선수와 지도자의 잘못된 욕망 때문이다.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축구는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다. 내전과 가난 등으로 상징되는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유럽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전부이자 절박함이 그들에게 있어 축구다. 아프리카에서 공을 차는 모든 선수들은 하나 같이 유럽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이 과정에서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빠지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의 사칭이다.
나이를 실제보다 적게 하면 당장의 경쟁력과 선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5살의 선수가 10대들과 함께 공을 찬다면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프로축구 선수가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선수와 한 팀에서 공을 차는 셈이다. 또 실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다면 오래 뛸 수 있는 잠재력과 미래 가치 등에서 선수로서의 메리트를 더할 수 있다. 프로팀 입장에선 어린데 잘하기까지 하니 해당 선수가 탐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 선수를 육성하는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축구협회의 경우도 해당 선수들의 성공으로 전체 판을 키우고자 하는 욕심으로 악마와 타협하곤 한다. 지도자와 축구협회가 나서 선수들의 나이 조작을 조장하는 것이다. 2003년 케냐, 2009년 나이지리아 나이 사칭 스캔들이 지도자와 축구협회 더 나아가 정부까지 얽힌 대표적 사건이었다.
인식의 부정은 실제의 부정이다
비의도적 사칭
이른 도태와 피지도 못한 도태
하지만 결코 이 같은 행동과 선택이 아프리카 축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 사칭은 축구계 전체에 아프리카 축구와 그 선수들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인식의 부정은 실제의 부정으로 연결된다. 축구 시장이 아프리카 축구와 선수들에 호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맞물려 아프리카 선수들이 나이 서른을 갓 넘기면 갑자기 기량이 곤두박질치는 커리어 절벽 현상은 이미 유럽 축구계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의 경쟁력 하락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실제 나이와 프로필 나이의 차이가 의심 받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나이 사칭의 보다 중대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선수 육성 시스템의 혼란과 혼선에 있다. 선수는 나이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나이에 맞는 훈련과 경기 경험을 가져야 한다. 15살 선수가 20살의 훈련과 실전의 강도를 갖는 것도, 20살의 선수가 15살의 그것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성인 레벨이 돼서 열 살 차 등의 나이 차이는 문제없지만 성장과 경험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할 유스 시절의 시스템 혼란과 혼선은 선수 성장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배워야할 때 제 때 못 배우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나이를 속여 어린 선수들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 자리에서 나이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과 경험을 쌓아야 하는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도태될 수 있는 것도 나이 사칭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은 어린 선수들과 뛰는 탓에 수준이 떨어져 필요한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어린 선수들은 그 만큼의 기회를 빼앗겨 도전해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악순환이 뒤풀이 되는 게 나이 사칭의 보다 중대한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FIFA의 검사 강화와 아프리카 축구의 인식 전환 등으로 요즘은 의도적으로 선수의 나이를 속이려고 하는 것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나이를 사칭하는 것은 줄었지만, 관공서나 행정 능력의 부족 등으로 실제 자기의 분명한 나이를 몰라 결과적으로 나이를 속이게 되는 비의도적 사칭은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초원과 들판에서 ‘캐스팅’ 되는 어린 아이들의 나이를 아무도 정확히 몰라 대충 몇 살 식으로 정하고 선수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따른 비의도적 사칭이다. 어떻게 보면 척박한 현실에 눌린 비극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분명한 건 앞서 지적처럼 선수 본인을 위해서도, 아프리카 축구를 위해서도, 선수가 뛸 프로 팀을 위해서도 정확한 나이의 파악과 해당 나이에 맞는 체계적인 습득과 성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처럼 선수들의 나이가 뒤죽박죽 엉켜 계속 간다면, 누군가는 너무 이른 도태(실제 나이보다 프로필 나이를 낮춘 선수들)라는 또 누군가는 피지도 못한 도태(실제 나이보다 내려 뛴 선수들에 가려 기회조차 얻지 못한 어린 선수들)라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 많은 아프리카 선수들의 도태는 어떤 식으로든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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